박종호의 오페라 바로알기
오페라의 또 하나의 주인공, 합창단
세계적인 프리마돈나인 메조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를 키운 것이
그녀의 어머니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녀의 어머니는 뛰어난 성
악가로서 어려서부터 체칠리아를 올바르게 훈련시켜서 완벽한 발성에
탄탄한 기량을 가진 오페라 스타로 키웠다. 바르톨리 역시 자신이 만났
던 교사들 가운데서 어머니보다 좋은 선생은 없었다고 회고한다. 그렇다
면 바르톨리의 어머니는 그녀보다 더 뛰어난 오페라 가수였을까? 바르톨
리의 어머니는 로마 오페라 극장의 합창단원이었다. 아버지 역시 같은
극장의 남성 합창단원이었다. 그들은 젊어서 만나 결혼을 하고 함께 고향
로마의 오페라 극장 합창단원으로 지원하여 평생 합창단원으로 일했다.
그리고 그들은 예쁜 딸을 낳아서 자신들의 경험과 실력으로 함께 좋은
가수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녀의 부모는 주역 가수로도 활동할 만큼 충
분한 실력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들이 합창단원을 선택한 것은
솔리스트가 된다면 감수해야 할 불편함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었다.
합창단원은 그 자체로 전문 음악가
세계적인 주역 가수들은 가정 생활을 잘 영위하기가 쉽지 않다. 전 세계
의 극장에서 다투어 부르니, 그들이 주로 하는 일은 어쩌면 노래보다 비
행기 타는 것일지도 모른다. 알고 지내던 이탈리아의 테너가 있었다. 비
록 세계적인 스타는 아니지만, 자신이 장기로 하는 몇몇 역할로 세계 여
러 무대에 출연하고 있는 성악가였다. 그런데 그는 공연을 위해 방문했
던 많은 도시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오직 각 도시에서 세
군데만을 기억할 뿐이었다. 공항·호텔·극장. 이 외의 곳을 그는 알지
못했다. 또한 그는 고향 우디네의 아름다운 산하를 그리워하지만, 언제
고향으로 갈 수 있을지 모른다. 이것이 오페라 가수들의 애환이다.
이런솔리스트 생활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주로 합창단을 택한다. 이렇듯 합창단은 그 자체
로서 전문직이다. 물론 합창단 중에서 솔리스트로서의 꿈을 키우고 있는 사람도 없지
는 않다. 하지만 매일 출퇴근하면서 종일 연습과 공연에 매진해야 하는 유럽 오페라하
우스의 구조상, 솔리스트로의 전향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원칙적으로 합창단은 솔리
스트가 되기 위한 전 단계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중요한 전문 음악가들인 것이다. 유럽
오페라하우스의 합창단원들은 이러한 긍지를 가지고 있으며, 오페라에서 합창 파트를
맡는 일에 자부심을 가진다. 그들은 지역사회에서 공연을 위해 헌신하며, 예술가로서
존경받는다. 그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좋은 대우를 받으며, 품위 유지도 가
능하고 보험과 연금은 물론 정년도 보장이 된다. 평생 사랑하는 도시를 떠나지 않으며
이웃과 사귀고, 가정을 영위하며 중산층 시민으로 살려 한다면 그 이상 좋을 수가 없는
직업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합창단원들도 그럴까? 우리나라 오페라 합창단들의 실정은 안타까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단 유럽처럼 매일 공연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극장에 소속된
것도 아니다. 상설로 유지되기도 어려워 단원들에게 유럽과 같은 긍지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유럽과 같은 수준의 연주력을 기대할 수는
없다. 또한 오랫동안 합창단원으로 남아있는 경우도 드물다. 국내 오페라 공연에 가보
면 합창단원들이 너무 젊어 모양이 부자연스러운 경우가 많다. 단원들은 거의 학생이
나 대학원생 정도의 나이이다. 반면 그들 앞에 서는 솔리스트는 대본상은 그들과 같은
또래여야 하는데도 나이가 훨씬 더 들어보인다. 합창단원들은 대부분 학생들인 반면
솔리스트는 교수인 셈이다. 이런 무대의 모습이야말로 우리나라 오페라계의 비전문적
인 현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오페라에서 합창은 무척 중요한 부분이다. 악보를 읽
을 줄 안다고 겨우 자기 파트나 외워서 아르바이트로 와서 서는 자리가 아니다. 국내 오
페라 합창단의 모습과 실력이 제대로 자리 잡을 때 비로소 우리나라 오페라 공연도 선
진국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오페라에서 합창의 중요성
오페라에서 합창이 갖는 중요성은‘상상 이상’이다. 원래 오페라는 합창이 이끌어가는
것이다. 오페라를 들어보라. 대부분의 오페라는 합창으로 시작된다. 막이 올라가면 합
창단이 등장하여 지금부터 시작될 내용을 소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합창단은 오페
라에서 원래 내레이션 역할을 한다. 그러한 합창의 유래는 대단히 오래되었다. 오페라
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부터 합창을 찾아볼 수 있다. 반원형의 야
외극장에서 극이 올려질 때면 앞에 무대가 만들어지고 무대의 양편으로는 합창석이 위
치한다. 그들을‘코러스’라고 불렀다. 지금의 합창이란 말이 여기서 시작되었다. 에우
리피데스의 비극 시대에 코러스는 대략 15명으로 정립되었다. 그들 중 한 명의 코러스
장(長)과 각기 7명씩의 두 팀으로 구성된다. 그들은 비극의 시작 부분부터 극의 내용을
소개하고 중간에 사건의 해설을 한다. 극이 진행되면 주인공들의 갈등이나 비탄을 대
신 감정으로 표현해주거나 여론의 평가를 하는 역할도 했다. 연기도 했지만 그냥 양편
에 서서 노래만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마치 요즘 교회에서 보는 성가대의 모습과 흡사
했다. 그런 합창의 역할은 오페라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하지만 현대 오페라에서는 더
나아가 합창단에게 보다 높은 음악적 표현력과 연기력까지 요구한다.
오페라 합창단은 그들만의 지휘자가 따로 있다. 오페라의 지휘자는 주로 오케스트라나
솔리스트들을 지휘하기 때문에 따로 합창단을 연습시킬 만한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또한 합창단들은 그들만으로도 중요한 전문적 조직이므로 평소 그들을 지휘하는 지휘
자를 가지게 된다. 오페라 공연의 막이 내리면, 커튼 콜이 시작된다. 합창단이 인사를
한 후에 혼자 나와서 관객에게 인사하는 사람이 있는데, 보통 그가 합창지휘자다. 무대
위에서 오랫동안 준비하고 수고한 그는 공연의 숨은 공로자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합
창 지휘자들도 있었다. 로버트 쇼 같은 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붙인 전문 합창단을 조직
하여 오페라뿐 아니라 콘서트에서도 크게 인기를 얻었다. 대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
니니가 그의 합창을 듣고 감탄하여 이후 자신의 오페라에서는 꼭 로버트 쇼 합창단이
출연하는 것을 지휘 조건으로 달았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유명 오페라하우스는 합
창단 수준도 대단하다. 특히 합창단의 수준이 높기로 유명한 극장은 밀라노의 라 스칼
라 극장·빈 국립 오페라 극장·베를린 도이치 오페라 극장 등으로, 그곳 합창단원들
의 실력과 자부심은 솔리스트 못지않다. 세계의 극장 오페라 공연 때에 자주 초빙되는
실력 넘치는 인기 합창단으로는 에릭 에릭손 합창단과 베를린 방송 합창단 등이 있다.
이렇듯 오페라에서 합창단은 중요한 파트이며 오페라의 또 다른 주역이다.
글 _ 박종호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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