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15년간 공석이었던 세계 최고 권위의 쇼팽 콩쿠르의 1위 자리를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중국인으로서는 최초, 콩쿠르 역사상 최연소로 거머쥐며
세계를 놀라게 한 최고의 피아니스트!
* 자타가 공인하는 쇼팽 스페셜리스트가 쇼팽 탄생 200주년,
쇼팽 콩쿠르 우승 10주년을 맞아 펼치는 월드 투어!
* 녹턴부터 마주르카, 소나타 그리고 폴로네이즈까지
쇼팽 피아노 작품의 정수를 만날 수 있는 All Chopin 프로그램!
프로그램..
Five Nocturnes Op.9 No.1, Op.9 No.2, Op.15 No.2, Op.27 No.2, Op.48 No.1
녹턴 중 Op.9 No.1, Op.9 No.2, Op.15 No.2, Op.27 No.2, Op.48 No.1
Andante spianato et Grande Polonaise brillante, Op.22
안단테 스피아나토와 화려한 대 폴로네이즈 Op.22
- Intermission -
Four Mazurkas, Op.33
네 개의 마주르카 Op. 33
Sonata No.2
소나타 2번
Polonaise `Hero`, Op.53
‘영웅’ 폴로네이즈 Op. 53
연주자 프로필
윤디의 음악 경력은 4살 때 아코디언을 배우면서 시작되었다. 그의 뛰어난 음악적 재능은 1년 뒤 충칭 아코디언 대회에서 1등 수상을 함으로써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7살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여 18살 되던 해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제14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쇼팽 콩쿠르 사상 최연소 우승자가 되었다.
뉴욕타임즈의 앤소니 토마시니(Anthony Tomassini)는 최근 “이미 4개의 도이치 그라모폰 음반을 발매한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이 눈부신 재능의 비르투오소는 빠르게 성장했다.“ 라고 평하였다. 윤디는 2003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미국 데뷔무대에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하여 관객들을 사로잡았고, 2004년 4월에는 북미 데뷔 리사이틀 투어공연을 마쳤는데 보스톤, 벤쿠버, 샌프란시스코와 뉴욕 공연은 매진기록을 세웠다. 2004년 8월에는 탱글우드 오자와홀의 10주년을 기념하는 갈라 콘서트를, 2005년 2월에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같은 해 봄에는 American Youth Symphony 50주년을 기념하여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카네기홀)에서 공연한 있다. 또한 2005년 4월에는 두 번째 미국 리사이틀 투어 공연을 시애틀, 포틀랜드, 샌디에고, 신시네티, 콜럼버스, 캔자스시, 볼티모어, 그리고 뉴욕의 앨리스 툴리 홀에서 가졌다. 이후 신시네티 심포니와 그리그 협주곡, 파보 야르비가 지휘한 베를린 심포니, 일본 NHK 심포니와 연주를 계속하였다.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뿐만 아니라, 유리 시모노프 지휘로 모스크바 필하모닉과 독일 투어를 했고, 프라하, 파리, 버비어, 말료르카에서 독주회를 가졌으며, 쇼팽과 리스트 곡으로 카네기홀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데뷔무대도 가졌다.
2006년 윤디는 홍콩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홍콩 공연을 비롯하여,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런던 바비칸 센터, 서울 등 세계 투어를 하였고,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하는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이스라엘 데뷔무대를 가졌으며, 이탈리아의 스폴레토, 빈의 무지크페라인, 일본에서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와도 공연을 가졌다. 윤디는 취리히의 톤 할레에서 취리히 챔버 오케스트라와 공연하였고, 뉴욕의 카네기홀을 비롯, 미국 전역에서 독주회를 가졌으며, 캐나다, 독일, 런던(퀸 엘리자베스 홀), 파리(샤를레 극장), 핀란드, 덴마크, 룩셈부르크, 중국 전역을 도는 독주회를 가지며 관객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2001년 도이치 그라모폰 사와 전격 계약하며 7장 여의 음반을 발매한 윤디는 2007년 5월 중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마에스트로 세이지 오자와와 같이 라벨 피아노 협주곡과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레코딩하였다. (‘강하고 열광적이고 위압적인 프로코피예프 협주곡이야말로 그에게 이상적인 곡이다.’ -2007.11 뉴욕타임즈)
2010년 EMI 음반사로 이적한 윤디는 쇼팽 탄생 200주년을 맞이해 녹턴 전곡으로 이루어진 새 앨범을 발매했으며, 전곡 쇼팽 레퍼토리로 폴란드 바르샤바 내셔널 오페라 하우스에서 열린 쇼팽 탄생 200주년 기념 갈라 콘서트를 비롯해 이후 홍콩, 베이루트, 에인트호번, 런던, 도르트문트, 룩셈부르크, 스트라스부르그, 아부다비, 뉴욕, 파리, 프랑크푸르트, 뮌헨, 밀라노, 도쿄, 서울 등에서 리사이틀을 가진다.
쇼팽 소나타 제2번 B플랫 단조(op.35)
1악장 Grave, doppio movimento
클럽발코니/김인주차장
지난 9월 30일, 제16회 쇼팽 콩쿠르의 막이 올랐다.
11월 1일 윤디의 리사이틀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 이번 쇼팽 콩쿠르 (http://konkurs.chopin.pl)에는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된다.
임동혁, 동민 형제의 3위 공동 수상 소식으로 대한민국이 떠들썩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이란 시간이 지났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뜬금없이 이런 데서 세월이 유수 같음을 느끼고 급 우울해진다…T.T)
이번 쇼팽 콩쿠르는 쇼팽 탄생 200주년을 맞아 더욱 특별하게 진행된다. 우선 오프닝 콘서트는 이름만 들어도 두근거리는 피아니스트 미츠코 우치다의 리사이틀로 시작했다. 제8회 쇼팽 콩쿠르의 2위 입상자였던 미치코 우치다는 이번 쇼팽 콩쿠르를 위해 40년 만에 폴란드를 다시 방문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걸 보면 새로운 곳에 가는 게 두려워서 아직 한국에 오지 않고 있다는 소문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꼭 데려오고 말 것이다!!!) 특히,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로 알려진 그녀가 쇼팽을 녹음한 것은 1980년대에 딱 한번뿐이었고, 그나마 그 음반도 더 이상 구할 수가 없다고 하니, 쇼팽 프렐류드와 소나타를 연주했던 이번 공연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을지는 상상이 되고도 남는다.
심사위원단도 어느 해 못지 않게 화려하다. 마르타 아르헤리치, 필립 앙트르몽, 넬슨 프레이레, 아담 하라셰비츠, 당타이손, 후총 등 걸출한 피아니스트들이 다 모였다.
쇼팽 콩쿠르가 이렇게 뜨겁게 진행되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조용한 느낌이다. 아무래도 2005년도에는 임동혁, 임동민, 손열음, 벤 킴 등 국내 스타급 연주자들이 총출동했기에 국내 언론의 집중을 받았던 것이리라. 올해 쇼팽 콩쿠르에서는 4명의 한국인 연주자가 본선에 올랐고, 그 중 2명이(김다솔, 서형민) 1차를 통과해 현재 2차 본선이 진행 중이다.
쇼팽 콩쿠르를 얘기하면서 역대 수상자를 빼놓을 수 없다.
세계 3대 콩쿠르로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쇼팽 콩쿠르를 꼽곤 하지만, 피아노 분야에서는 쇼팽 콩쿠르가 단연 세계 최고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마우리치오 폴리니, 마르타 아르헤리치, 게릭 올슨, 미츠코 우치다,크리스티안 지메르만, 스타니슬라브 부닌, 윤디 등 거장급 피아니스트들이 모두 쇼팽 콩쿠르 출신이다.
콩쿠르의 명성이 높은 만큼 결과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5회 콩쿠르에서 아쉬케나지가 2위에 그쳤을 때는 심사위원장인 미켈란젤리가 이에 불복하며 사임했고, 10회 때 독특한 연주로 파란을 일으켰던 이보 포고렐리치가 1차 본선을 통과하자 심사위원이었던 로이스 켄트너가 불만을 표시하며 사임했다. 반면 이보 포고렐리치가 결선 진출에 실패하자 이번에는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이에 불복, 심사위원직을 내려놓았다.
한편, 만장일치로 우승한 경우는 딱 두 번 있었는데, 첫 번째가 마우리치오 폴리니이다. 폴리니가 연주를 끝냈을 때 심사위원이었던 루빈슈타인이 “우리 중에 누가 저만큼 칠 수 있겠는가?”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두 번째 만장일치는 2000년 윤디가 우승할 때였다.
이때 윤디는 역대 최연소 우승, 15년만의 우승자 탄생, 두 번째 아시아인 우승 등 수많은 화제를 뿌리며 그야말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리고 윤디는 올해 쇼팽 탄생 200주년, 쇼팽콩쿨 우승 10주년을 맞아 월드투어를 준비하고 있다. 물론 전곡 쇼팽이다. 쇼팽 콩쿨에 연이은 윤디의 리사이틀까지 이 가을은 쇼팽으로 물들 것 같은 예감이다.
<여기서 잠깐 2000년 윤디의 쇼팽콩쿨 모습을 보도록 하자, 앳된 모습이 풋풋하다 ^^>
이번 16회 콩쿠르의 우승자는 이번 달 20일경 발표된다. 이번 콩쿠르에서 탄생할 클래식계의 스타는 누구일지, 이왕이면 한국에서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연주곡 : F. 쇼팽 <피아노협주곡> 제1번 1악장 전반부
연 주 : 피아니스트 윤디 (2000년 쇼팽콩쿨 결선 실황)
윤디, 그대는 여전히 챔피언 / 김주영 (피아니스트. 음악 칼럼니스트)
작가인 로맹 롤랑이 남긴 말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객석에 앉아 있는 대부분의 청중은 음악보다는 그 음악가에 더 관심이많다.”
같은 소재에서 다른 주제를 뽑아내는 일이 되풀이되고, 그 작업이 고될수록 의미있는 것이 되는, 클래식 음악계에서 이른바‘새로움’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청중은 어떤 새로움을 기대하고 바라며 음악회를 찾는 것일까.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는 여기에 심플하지만 나름대로 곱씹어볼 만한 의견을 남기고 있다.
“사람들이 제 특별한 연주 의상(이세이 미야키의 독특한 디자인을 주로 입는 것으로 유명하다)에 관심이 있어 연주회장을 찾는다 해도 저는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그들이 제가 연주하는 음악도 사랑해줄 테니까요.”
하긴 독특한 무대 매너나 의상이 주는 마이스키의 이미지는 이제 거의 음악과 동일시되는 듯하다. 모로 가도 콘서트홀로 가기만 하면 될까?
필자의 의견은 긍정적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보아 참으로 폭넓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피아니스트 윤디의 음악과 그 삶도 마찬가지로 희망적이다.
피아노에 모든 것을 바치다
“사람들이 저보고 잘생겼다고 말하면… 물론 기분 좋습니다. 무대에 오를 때 자신감이 조금 더 생긴다고나 할까요 ?”한 TV 인터뷰에서 윤디가 한 말이다.
그의 자신감에 많은 힘을 보태줄 여성 팬들도 많지만, 필자의 입장에서 윤디가 진정으로 멋지게 보이는 이유는 그가 같은 세대의 음악가들 중 가장 진지하고, 피아노라는 대상에 모든 것을 바칠 준비가 된 음악가이기 때문이다.
“미래에 제 아내가 될 사람이나 부모님이라고 하더라도 제 인생에서 피아노보다 우선할 수는 없습니다. 제 결심을 모두 이해해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외골수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이런‘열정’은 아마도 그가 아코디언 연주로 상을 받고, 피아노 건반 앞에 처음 앉았던 그 어린 시절부터였을 거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열여덟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세계 최고 피아노 콩쿠르의 우승자가 되고(2000년 바르샤바 쇼팽 콩쿠르) 한 순간에 중국을, 아니 중국 음악교육을 대표하는 천재로 떠올랐을 때 그의 기분은 어떠했을까 ?
“솔직히 그때 저는 콩쿠르가 뭔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 같아요. 단지 저보다 잘하는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접하고 경험을 쌓으려고 했었는데……. 그래서 그 후 독일에서 공부를 계속했습니다.”
‘과정’보다‘결과’가 먼저 찾아온 행운의 주인공은 그러나 침착하게 자신의 음악 운명을 정리하며 차곡차곡 내면을 채워나갔다.
데뷔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의 연주를 들으며 한결같이 느끼는 장점 역시 스승이나 선배, 혹은 동료들과의 교류를 통해 배운 것들을 참으로 합리적으로 이용하고 있구나 하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밝고 낙천적인 기질을 지닌 윤디의 음악은 건강한 에너지를 동반한 음색과 무리없이 움직이는 탄력 있는 손가락을 통해 내면에 지니고 있는 감성을 건반에 솔직하게 담아내는 특질을 지닌다.
거기에 타고난 직관을 통해 작품의 스케일을 과도하지 않게 조절하고 그 표면을 매끈하게 꾸며내는 능력도 소유하고 있다. 쇼팽은 말할 것도 없고, 리스트, 프로코피예프 등 비르투오시티와 상쾌한 느낌의 서정이 함께 요구되는 작곡가에 능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진행중인 쇼팽 탐험
센젠 음악원을 졸업하고 곧바로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에서 학업을 이어가며 시작한 그의 21세기 초 활동은 그야말로 숨 가빴다. 2003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며 미국 데뷔를 했고, 2004년 4월에는 북미 투어에서 매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05년에는 신시내티 심포니, 베를린 심포니,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등과의 협연이 이어졌으며, 2006년에는 홍콩, 런던 바비칸센터, 빈의 무지크페라인 등에서 공연을 가졌다.
음반 작업에서도 순도 높은 결과물이 잇따라 출시되었다. 쇼팽의 소나타, 스케르초, 즉흥곡 등의 음반을 비롯하여 리스트/쇼팽 협주곡(앤드루 데이비스 지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리스트의 독집 앨범 등은 아직도 구매자들의 위시 리스트에 올라 있는 호연들이다.
또한 2007년 5월 중국인으로는 최초로 오자와 세이지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과 함께 라벨과 프로코피예프의 협주곡을 녹음하여‘강하고 열광적인 명연’이라는 평단의 극찬을 이끌어낸 바 있다.
올해 스물여덟 살, 이제 이십대를 막 넘겼다고 생각되는 나이이지만 ‘젊은 거장’이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은 윤디에게 아마도 2010년은 앞으로만 나아가던 자신의 내면을 살피고 연주 인생의‘발자국’들을 재점검하기에 알맞은 시기라는 생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윤디의 음악적 고향인 쇼팽의 탄생 200주년으로 협주곡과 독주 레퍼토리들을 모두 포함한 본격적인‘쇼팽 탐험’이 전 세계 무대에서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그의 팬들 대다수가 인정하는 바, 지난 2009년 윤디는 나름대로 과도기를 보내야만 했다. 주요 공연장에서의 리사이틀이 연기되고 앨범 신보의 소식도 오랫동안 들리지 않았으며 여기에 따른 크고 작은 루머가 들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잠깐의 고민은 창조적인 휴식과 새로운 에너지로 이어졌다.
참으로 반갑게 출시된 이번 쇼팽 신보는 새로운 음반사에서의 첫 작품으로, 그런 의미에서 절취부심, 음율 하나하나마다 피아니스트의 새로운 각오가 돋보이는 결과물이다.
작곡가의 감성을 꿰뚫는 본질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야상곡’전집에서, 새롭게‘윤디’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그는 작품의 명암과 운동성, 뉘앙스의 다양한 종류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분석하여 곡마다 다른 색채로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고 있다.
내한 공연 때마다‘베스트셀러 연주자’로 팬들의 열광적인 환호 속에 공연을 마쳤던 윤디의 2010년 늦가을의 공연은 바로 그 쇼팽이다. 신보에 담긴‘녹턴’다섯 곡을 포함하여‘마주르카’, 소나타 제2번,‘ 영웅’ 폴로네즈가 이어진다.
윤디의 부드러운 눈매와 찰랑거리는 곱슬머리에 열광하는 소녀 팬들이나, 좀더 진지하게 쇼팽 음악의 원류를 경험해보려는 애호가, 피아노라는 악기 자체에 대한 애정을 지닌 청중,그 어느 이에게 윤디는 새롭게 업그레이드된 쇼팽을 통해 뿌듯한 만족감을 선사할 것이라 믿는다.
이미 10년 전 쇼팽으로 세계를 정복했던 윤디는 아직도 챔피언이며, 더욱 멋진 모습으로 우리앞에 와 있다.
공연후기....
2000년 그가 쇼팽 피아노 콩쿨에서 15년만에 탄생한 최연소 우승자라는...
그것도 폴리니 다음으로 처음으로 만장일치로.....
그렇게 많은 파란을 일으키며 우승을 거머쥔 지도 어언 10년이 흘렀다.
그리고 이제 그는 어엿한 쇼팽콩쿨의 우승자라는 화려한 수식어때문이 아닌 진정 비르투오조 피아니스트,
쇼팽 스페셜리스트가 되어서 우뚝 무대에 섰다.
늘 그렇지만 유독 그의 담대한 표정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때문이 아닐까~
오랫만에 3층 좌석에 앉았더니 그가 너무나 까마득하게 보인다.
잠깐동안 후회를 하고 있는 순간...그의 손이 건반에 올라가고 매혹적인 선율은 예당홀을 완전히 메우며 울려 퍼졌다. 도저히 들릴것 같지 않았던 소리가 그렇게도 아름답게 옥구슬 굴러 떨어지듯이 퍼졌다.
그 순간 난 망원경을 내려놓았다.
쇼팽곡은 소리를 탐닉하는 거야!!
아니, 그럴 수 밖에 없지~
난....
쇼팽 곡을 들을때마다 연주자에게 몰입하기 보다는 허공에 알알이 맺혀 떠다니는 소리들을 탐닉했다.
늘...그렇게 허공에 맺혀있는 소리들을 들으며 천상의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천상이 아닌....너무나 평화로운 일상이 그려진 한편의 영화를 보았어~
푸르른 잔디가 넓다란 정원을 이루고 온갖 아름다운 꽃과 나비,새들이 자유롭게 날고있는....
그 아름다움은 창을 통해 내 방안으로 들어왔지.
햇살이 부서져내렸어.침대 머리맡으로....
그리고 내 귓가에, 아니 집안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는 너무나 아름다운 선율들....
쇼팽이었어....
아~~ 그 순간 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사랑스런 여인이 되어 있는거쥐~
야상곡을 연주하고 있는 내내 나는 영화속 주인공이 되어있었다.
박수소리가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그의 두번째 파트의 곡을 맞이했다.
쇼팽의 아름다운 안단테 스피아나토 선율은 윤디의 손끝을 타고 더욱 더 매혹적으로 피어났다.
여늬 연주자들 처럼 온몸을 녹아내며 연주하지 않아도 그의 소리는 우리 가슴속으로 파고들어와 녹아났다.
그대로 이어진 화려한 대 폴로네이즈....
제목만큼이나 화려하고 감정도 더 풍부하다.
더욱 섬세하고 더욱 심취되고 한없이 격정적이기도 한....
그렇게 윤디는 1부 마지막 곡을 우리의 감정을 뒤 흔들어 놓은 채 그의 한쪽 팔을 위로 쫙 뻗어올리며 화려하게 끝을 냈다. 그 순간 폭발하듯 터진 탄성......그야말로 객석은 감동의 도가니였다.
2부는 1부의 흔들린 감정 그대로 이어질 터....
마주르카와 소나타 2번, 폴로네이즈 '영웅'이다.
꿈꾸듯 잔잔했던 1부와는 다른... 다소 무겁고 격정적이다.
망원경을 손에서 뗄 수 없다
나 역시 연주자와 함께 호흡하며 몰입해 들어간다.
어느사이 마주르카는 끝이나고 소나타다.
그중에서도 3악장 장송행진곡은 심연을 뒤 흔들어 놓는다. 그야말로 압권이다.
이제 마지막 폴로네이즈...
영웅....
제목만큼이나 힘있고 무겁고 그리고 화려하고 격정적이다.
연주자와 관객이 하나가 되어 완전 몰입의 경지까지 빠뜨린....
정말 멋졌다.
너무나 섬세했고, 부드러웠고,파워풀했다.
몸짓은 시종일관 잔잔한 편이었지만 그의 손끝에서 나온 연주는 그렇지 않았다.
손가락의 힘!! ?? 오옷~~
환호소리 예당을 뒤흔들고....윤디 리는 마치 어린 아이처럼 오동통한 얼굴에 살짝 미소를 얹으며 답례했다.
그렇게 몇번의 커튼 콜 이어지고.....
드디어 고대하던 앵콜연주 들어갔다.
아~~ 지난 번에도 그랬었든거 같은데.....
자신의 나라 민속곡이었다.
마치 쇼팽의 곡 연속선상에 놓여있는 것처럼 방울 방울 아름다운 선율들이 피아노에서 피어 올랐다.
마치 맑디맑은 호수 속을 들여다 보고 있는 듯....투명하고 맑고 예쁜....
언제였든가~ 깊은 산속 호수에서 유람선을 타고 유유자적 그림같은 절경속에 빠져있는데, 아리따운 여인이
정자에서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었어~ㅎㅎ
윤디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유람객들의 간장을 녹여내듯 노래부르던 그 여인이 떠오르는 거야~
ㅎㅎ
한곡으로 안되는 거 알잖아~크레디아에서 분명 한국 관객들 한곡으로 안된다고 일러주었을테니까~ㅎㅎ
두번째 곡.....자신의 비르투오조를 완전 보여준 연주....
쇼팽 에튀드 op.10-12 혁명이었다.
시작부터 강렬한 터치의 이 곡이 시작되자 객석에선 탄성이 터졌다.
1831년 콘스탄틴 장군이 이끈 러시아가 폴란드 시민의 혁명운동을 강제탄압 하여서 바르샤바를 점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비탄에 젖어 작곡했다는 이곡....
비탄에 젖은 격정과 슬픔이 음악을 통해 이렇게 잘 표현되어 있을까 싶을만큼 보고 듣는이들의 감정마저 격하게 만든다.
당연히 객석은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다.
격해진 마음으로 애타게 박수갈채를 더 보냈지만.....앵콜은 여기서 끝....
생각보다는 팬사인회장에 그는 빨리 나타났다.
싸인을 받기로 줄을 서기엔 이미 불가능상태이고 어떻게 사진이라도 한장 찍을까....무거운 카메라를 들고갔지만 접근조차 쉽지가 않다.
오랫만에 중국에서 귀국한 세윤씨를 비롯 발코니 식구들과 담소를 나누다가 뒤늦게 접근을 시도해봤지만......손을 하늘높이 치켜들어 사람들 머리 위로 대충 찍자니 제대로 된 사진이 나올 리 만무다.
그래도 끝까지 버텼다가 제대로 된 사진을 한장이라도 얻을걸....
내일 있을 팬미팅에 가서 실컷 찍자고 그냥 나왔더니, 팬미팅에선 아예 촬영 조차 금지시키다니....
무슨 팬미팅이.....??ㅠㅠ
Frederick Chopin(1810~1849)
쇼팽은 피아노에 자신의 예술혼을 절묘하게 불어 넣어 주옥같은 걸작들을 만들어낸 "피아노의 시인"으로서, 19세기의 낭만파 음악 사조에 이상적으로 들어맞는 피아노 스타일을 창출했다.
그는 피아노 소나타 장르에 3개의 작품을 남겼다. 대체로 이들 소나타는 프렐류드, 녹턴, 왈츠, 폴로네즈, 발라드 등 다른 장르의 그의 피아노 작품들에 비해 독창적 예술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러나 제2번 b플랫 단조는 인기있는 곡으로, 제3악장 장송행진곡(Marche Funebre)을 제외한 나머지 악장들은 1839년 여름 작곡되였는데, 당시 노앙에서 상드와 함께 행복한 시간들 보내면서 정열적으로 작품들을 썼다.
한편 "장송행진곡"은 그보다 2년전에 완성되어 4악장중 3악장으로 포함하였다. 이 소나타는 고국 폴란드를 러시아에 빼앗긴 슬픔에 "장송행진곡 소나타" 내지 이와 비슷한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쇼팽은 1810년 3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아버지는 바르샤바 육군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친 프랑스인 니콜라스 쇼팽이고 어머니는 폴란드 귀족으로 피아니스트 유스티나 크지노프스카 슬하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우고, 1816년 정식으로 보이치에흐 지브니에게 피아노를 사사했는데, 1818년 스승 지브니는 쇼팽에게 더이상 가르칠게 없다면서 스스로 그만두었다.
1822년에 바르샤바음악원 창설자 J.엘스너에게 화성법과 대위법을 배우고, 중학교 재학중 러시아 황제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 칭송을 들었다. 1826년 음악원에 입학하여 피아노 소나타와 변주곡 등을 작곡하고, 또 이 무렵 J.N.후멜과 사귀게 됨으로써 창작하는 데 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830년 11월 쇼팽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여행 중 폴란드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그후 그는 후멜, 탈베르크, K.체르니 같은 피아니스트와 교류를 가졌고, 1831년 9월 빈을 떠나 슈투트가르트에 도착하여, 러시아군에 의해 폴란드혁명이 진압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혁명에 큰 기대를 걸었던 쇼팽의 실망은 컸다.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이 혁명 실패의 소식을 듣고 작곡것이 오늘날 "혁명 에튀드(작품 10의 12)"로 불리는 작품이다.
그의 천재성을 누구보다도 일찍 발견하여 음악평론으로 세상에 알린 것은 슈만이었다. 1832년 파리에서의 최초 연주회에서 호평받은 후 폴란드 귀족 소개로 파리 사교계에 발을 들여놓았으며, 창작활동도 활발하였다. 1836년 드레스덴에서 바르샤바 시절의 여자친구인 M.보진스카를 다시 만나 이듬해에는 약혼까지 하였으나, 이때 쇼팽은 이미 폐결핵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주위의 반대도 많아 결국 파혼하게 되었다. 쇼팽은 1836년 겨울 마리 다구 백작부인이 주최한 파티에 참석하여 친구인 리스트의 소개로 한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가 바로 여류 인기작가였던 조르주 상드를 알게 되었다.
남성의 기능을 상실한 쇼팽보다 6세나 연상인 그녀는 쇼팽의 지병에 신경을 쓰며 모성애로 그를 돌보아주어 두 사람의 관계는 약 10년이나 계속되었으나, 1846년 가정불화와 쇼팽의 건강악화로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된다.
그후 경제적 문제로 1848년 영국으로 건너가 피아노를 연주하였다. 파리로 돌아온 후 건강이 더욱 악화되어, 이듬해인 1849년 가을 사망하였으며. 그의 묘에는 그가 바르샤바를 떠날 때 선물로 받은 폴란드의 흙이 뿌려졌다.
파리 외곽 ‘페르 라세즈’에 있는 묘소
쇼팽의 작품에는 가곡과 첼로소나타, 피아노삼중주곡 등도 있으나, 중요한 것은 약 200곡에 이르는 피아노곡이다. 그리고 협주곡 2곡, 소나타 3곡 이외에 전주곡·연습곡·발라드·야상곡·즉흥곡·왈츠·폴로네즈·마주르카 등의 낭만파적인 소품이 압도적으로 많은 점이 특징이다. 피아노 연주에서 페달을 사용하여 음색의 종류를 늘렸으며, 약박(弱拍)을 악보에 기보(記譜)된 형보다 약간 인접한 강박(强拍)에 접근시키는 연주법을 사용, 후세 피아노 연주법에 큰 영향을 끼쳤다.
피아노의 시인이란 칭호에 걸맞게 작품의 거의 전부가 피아노 곡인 쇼팽은 조국 폴란드의 민속음악적 요소를 독일의 조성음악언어에 성공적으로 결부시킨 최초의 민족음악가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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