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기악

베토벤 현악4중주 16번 F장조 op,135

나베가 2006. 6. 9. 02:13
String Quartet No.16 in F Major Op.135 - 3rd Mov.
Ludwig van Beethoven 1770 - 1827
 
3rd mov. Lento assai e cantante tranquillo
Leonard Bernstein
Wiener Philharmoniker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6F장조, Op. 135
신의 악기가 되어 도달한 환희
불세출의 천재 피아니스트 디누 리파티가 33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들었던 곡은 베토벤이 완성한 마지막 곡인 현악 4중주 제16F장조 Op.135였다. 그는 그의 운명이 스러져 가던 마지막 순간에 이 곡을 들으면서 아내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위대한 작곡가가 된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신의 악기가 되어야만 합니다."
위대한 베토벤의 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위대한 이 현악 4중주곡을 쓰면서 베토벤은 더 이상 인간적인 감정의 격류에 휘말려 자신의 작품에 깊이와 위대함을 부여하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는 오히려 모든 것을 초극한 극히 일상적인 삶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고, 자신의 삶을 고통까지도 묵묵히 받아들임으로써 더 이상 고뇌와 투쟁의 흔적이 그의 가슴을 얼룩지게 하는 일은 없었다. 이미 콘 앞에까지 닥친 죽음의 그림자도 그의 마음 속의 청명함을 앗아가지는 못했던지, 이 곡은 그토록 반항하고 투쟁했던 자의 마지막 작품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투명하고 평온한 확신감에 가득 차 있다. 그것은 진정으로 존재의 의미를 이해하고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했던 자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얻을 수 있었던 고요한 해탈과도 같은 삶의 깊은 수인이었던 것이다.
로맹 롤랑이 유명한 그의 베토벤 전기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삶은 벅찬 것이다. 범용한 심령으로서 스스로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삶은 더욱 나날의 고투인 것이다. 그러나 베토벤은 언제나 스스로 안식 속에 머무르기보다는 차라리 프로메테우스의 고통을 택했다. 그는 깊은 고뇌와의 처절한 투쟁을 통해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은 그에게 비록 헤어나기 힘든 고통을 안겨주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 주었다. 이는 끝없이 순환하는 대자연의 섭리 속에 자신의 존재를 남김없이 투여함으로써 얻어낸 것이었으며, 모든 헛된 욕망이 사그러든 후에 찾아든 청량함이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베토벤은 신의 악기가 되어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야만 하는가? 그래야만 한다."
이 마지막 4중주곡은 1822년부터 시작되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된 5곡의 위대한 후기 4중주곡 가운데 이례적으로 짧고 평범함 구조를 지니고 있다. 베토벤의 후기 4중주곡들은 형식 파괴의 경연장이라고 할 만큼 일상적인 구조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는데, 이것은 그의 생각이 얼마나 자유롭고 또 독창성에 가득 차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베토벤의 후기 4중주곡은 통상적인 4악장구조를 지닌 Op. 127로부터 시작되지만 그의 상념은 더욱 깊어지고 그의 내면은 더욱 복잡하게 얽혀, 그가 오랫동안 이상으로 여겨왔던 형식의 굳건함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보다 자유로운 표현을 보장해줄 5개 악장(Op. 132), 6개 악장(Op. 130), 7개 악장(Op. 131)의 곡으로 이어졌다가 최후의 작품에 이르러서야 다시 일상의 형식 속으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그를 짓누르던 고뇌의 그림자는 사라지고 영혼은 해방되어 투명할 정도로 맑고 자유로운 정신이 곡 전체를 지배한다. '고뇌를 통하여 환희에 도달'(Durch Leiden Freude)하려 했던 베토벤의 생각은 고통에 찬 삶 자체를 이해하고 받아들임으로써 비로소 실현되었던 것이다.
서양음악사상 가장 아름다운 영혼이 깃든 작품 중의 하나로 평가되는 이 4중주곡은 베토벤이 남긴 모든 현악 4중주곡 가운데서도 그 길이가 가장 짧은 작품으로, 이처럼 간명한 형태의 곡은 베토벤의 초기 4중주곡 가운데서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곡의 형식적 구조는 전통적인 4악장제를 취하고 있는데, 1악장과 제4악장에는 소나타 형식이, 스케르초에 해당되는 비바체의 제2악장에는 복합 3부형식이, 깊은 정감을 담고 노래하는 느린 제3악장에는 주제와 변주가 사용되고 있다.
이 곡은 경제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어려움이 계속 되던 18268월경 동생 요한이 살고 있던 오스트리아의 크나익센도르프에서 작곡을 시작해 그 해 1030일에 전곡을 완성했으나 베토벤 자신의 귀로는 결코 그 연주를 듣지 못했다. 이 곡의 초연은 베토벤이 죽은 지 거의 1년이 지난 1828323일 빈에서 슈판치히 4중주단에 의해 이루어졌다.
밝고 청명한 기운으로 가득 찬 제1악장은 지극히 간결하고 명쾌한 소나타 형식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초기 4중주곡을 연상케도 하지만 악상의 유창한 흐름이나 완벽한 유기적 구조는 확실히 후기 4중주곡의 특질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 악장에서 사용되는 두 개의 주제는 상당히 상징적이고 의미심장한 느낌을 주지만 악장 전체를 지배하는 간결하고 약동적인 리듬이 그것을 극복하고 지극히 청량한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 그 무렵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이미 회복할 길이 없는 절망적 상황에 빠져 있던 베토벤은 자신의 삶 자체를 대자연의 흐름에 동화시킴으로써 허무를 극복하고 존재의 참다운 의미를 찾아내고 있다. 이 악장은 형식적으로도 또 내면적으로도 최후의 악장에 연결되고 있는데, 제시부나 재현부에 비해 지극히 짧은 발전부를 두고 있는 것이 대단히 흥미롭다.
빛나게 빠른 템포의 스케르초 악장은 예리한 싱코페이션과 엇갈리는 리듬이 흐름의 추진력을 더해 주는데, 오로지 3도의 움직임을 갖는 주제의 단순한 선율은 독특한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 또 첼로와 비올라가 끌어내는 중음부의 끝없이 반복되는 음표들 위로 순식간에 거의 3옥타브를 상승해가는 바이올린의 절묘한 스케일이라든지, 다른 세 악기에 의해서 51번이나 집요하게 반복되는 오스티나토의 마디 위를 무서운 속도로 절룩거리며 나아가는 제1바이올린의 곡예에 가까운 움직임은, 이 스케르초 악장에 특유의 힘을 부여한다. 독특함과 다양함으로부터 단순 명료한 힘을 이끌어내고 있는 이 악장은 베토벤이 얼마나 위대한 작곡가인지를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악장의 구조는 중간부를 사이에 두고 거의 완벽하게 반복하는 스케르초의 각 파트가 각각 다시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 복합 3부 형식으로 되어 있다.
느리고 영감에 가득 찬 제3악장은 수많은 베토벤의 음악 가운데서도 가장 감동적인 흐름을 지니고 있는 아름다운 영혼의 노래로 베토벤의 후기 작품이 공통적으로 포함하고 있는 깊은 내면의 고백이다. 이 악장은 장중하고 의미심장한 주제로부터 시작해 모무 4번의 변주로 이어지는데, 지극히 깊고 단순한 선율이 수많은 곡절(복잡난해한 악상기호들의 연속)
과 단절(수많은 쉼표)을 통해 인간의 정신을 한없이 고양시키는 위대한 음악적 추상의 세계로 우리의 생각을 끌어올린다. 그러나 주제로부터 도입되는 변주곡의 음악적 비약이 심해 테마의 유추가 힘들어 실제로는 독립되어 진행되는 긴 선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튼 이 악장이야말로 만년의 베토벤이 프로메테우스적 투쟁의 세계로부터 해방되어 존재의 참된 의미를 포착하고 고요한 평온 속으로 몰입해가는 과정을 가장 심도 있게 보여주는 감명 깊은 영혼의 노래이다.
마지막 4중주곡의 마지막 악장은 실제로는 베토벤 절필의 곡은 아니지만 관념적인 의미에서는 분명히 그의 최후의 작품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최후의 최후라는 낭만적 의미에 보태어 베토벤이 악장의 첫머리에 써놓은 풀기 힘든 메모때문에 이 악장은 오랫동안 많은 억측을 불러 일으켰다. "어려운 결심, 꼭 그래야만 하는가, 그래야만 한다." 이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짐작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세속적인 해석으로부터 관념적인 해석에 이르기까지 실로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곡 자체의 성격으로 판단한다면 일상적인 사건의 유머러스한 상징은 분명히 아니다. 베토벤의 성격 자체도 그러려니와 당시 베토벤이 처한 상황 역시 그런 농담을 즐길만한 여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또 실제로 베토벤의 모든 음악 가운데 이 곡만큼 탈속적인 곡도 없기 때문이다.
이 악장의 음악적 구조는 소나타 형식인데, 그 배분은 제1악장과는 달리 세 부분이 거의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다만 재현부의 끝에 코다 34마디가 더 부가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내용면에서 재현부는 제시부로부터 상당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꼭 그래야만 하는가." "그래야만 한다." 베토벤은 이 두 문장에 각각 세개의 음표를 부여하고 있는데, 그것은 이 악장 전체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고 있다. 아무튼 청명하면서도 난해한 이 마지막 악장은 마치 그의 삶 전체를 회상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양현호/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