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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프로코피에프/ 히브리 주제에 의한 서곡(Overture on Hebrew Themes, op.34) - Borodin Quartet

나베가 2012. 4. 30. 03:57

Overture on Hebrew Themes, op.34

  프로코피에프 / 히브리 주제에 의한  서곡

  Sergej Sergejewitsch Prokofjew, 1891-1953


Overture on Hebrew Themes, for clarinet, string quartet & piano, Op. 34
Borodin Quartet
Eduard Brunner, clarinet
Oleg Maisenberg, piano

히브리 주제에 의한 서곡, 작곡 배경

1917년 레닌의 주도 아래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났다. 제정 러시아에서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으로 체제가 바뀌자 지주 계급 출신인 프로코피예프에게는 암울한 현실이 다가왔다.  더욱이 프로코피예프가 보기에는 당시 소련의 체제는 당분간 아무런 음악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듬해 5월 그는 시베리아와 일본을 경유해 망명길에 나섰다. 상황이 나아지면 몇 달 안에 귀국하리라고 마음 먹었다. 이 여행이 십수년간에 걸친 오랜 망명생활의 시작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러시아 혁명 당시 많은 음악인들이 러시아를 떠났는데, 작곡가로는 라흐마니노프, 체레프닌, 쉴링거, 메트너,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오를로프, 보로프스키, 바이올리니스트 하이페츠, 아크론, 밀스타인, 아우어, 첼리스트 피아티고르스키, 그라우단, 이론가 몇 평론가는 야서, 슬로님스키, 지휘자로는 쿠세비츠키가 망명을 떠났다.

소련 정부는 예술가의 출국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 같다. 출국 비자를 신청하면 쉽게 허락을 해주었다. 특히 프로코피예프가 출국 비자를 얻어내는데에는 루나카르스키의 도움이 컸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레닌 정권의 문화담당이었던 대중교육인민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루나카르스키는 1918년 프로코피예프를 떠나 보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삶의 혁명가라면 당신은 음악의 혁명가입니다. 우리가 함께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당신이 미국으로 가고 싶다면 막지는 않겠습니다.”

그는 1918년부터 22년까지 미국을 중심으로 캐나다와 유럽에서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로 활동했다. 그는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 히브리 주제에 의한 서곡,  피아노 협주곡 제3번 등 많은 작품을 썼다.

이 작품은 " 세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1918)을 완성한 다음에 작곡 하였다.  음악원 동료 중에서 함께 망명의 길을 택했던 유태계 친구들의 위촉으로 1919년 작곡한 ‘히브리 주제에 의한 서곡’은 클라리넷, 피아노, 현악4중주를 위한 6중주(Overture on Hebrew Themes, for clarinet, string quartet & piano, Op. 34 )으로 조국을 그리는 애틋한 서정시와도 같은 곡이며, 초연는 그 다음해 1월26일 뉴욕에서 열렸다. 

보르딘 사중주(Borodin Quartet, 1944~)

1944년 창단된 소련의 합주단. 모스크바 음악원 테리안 교수의 실내악 교실에서 수업을 받던 4명의 졸업생(제1바이올린에 로스티슬라프 루빈스키, 제2바이올린에 니나바르 샤이, 비올라에 루돌프 바르샤이, 첼로에 발렌틴 벨렌스키)들이 모여 만들었다.

얼마 후 모스크바 필하모니에 속하게 되어 명칭도 모스크바 필하모니 현악4중주단으로 바뀌었고, 1955년에는 당국으로부터 '보로딘 (기념 국립) 현악4중주단'이라는 명칭이 주어졌다. 1962년 에든버러 음악제에 데뷔하면서 본격적으로 서유럽에서 인정받게 되었고, 1964년 마침내 미국 데뷔를 했다. 다양한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고, 특히 차이코프스키·스트라빈스키·쇼스타코비치 등 러시아 작곡가들의 실내악 연주에 정평이 나 있다.

<음원출처:향기로운삶의쉼터>

출처 : 향기로운 삶의쉼터
글쓴이 : 하늘바람꽃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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