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반도(2009.8~2009.9)

3.루마니아-부카레스트/브란성

나베가 2009. 9. 29. 04:00

 버스를 타고 휙휙 지나치는 것만으로도 '낭만'이라는 단어로 도배를 할만큼 감상에 휩싸이다 보니 어느새 일명 드라큘라성인

<브란성>에 도착을 했다.

 

 

멀리 뾰족이 솟아 보이는 <브란성>이 앙증맞아 보인다.

입구엔 양쪽으로 온갖 종류의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하게 서있다.

하나 하나 들여다 보면 너무나 재미있을 것 같지만, 가이드 따라가며 대충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도 벅차다.

 

나의 뜀박질은 이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카메라에 담고 달리고, 잠시 또 멈춰서서 찍고 또 달리고....

 

 일행들은 벌써 저만치 걸어가고 있다.

 

 헉!! 우리의 인솔가이드보다도 처졌네~ㅎㅎ

 

오옷~

EBS 테마기행에서 보았던 기념품 가게다.

그 사람들은 이 가게에 서서 온갖 드라큘라의 가면을 써보며 배꼽이 빠져라고 웃어재꼈는데...

무서운게 아니라 너무 웃긴다고....ㅋㅋㅋㅋ

아닌게 아니라 내가 저 가면을 쓴 모습을....아니, 모든 일행들이 저 가면들을 한번씩 써보았다면 얼마나 그 모습들이 웃겼을까...

아마 너무 웃겨서 배꼽을 찾느라 다음 여정에 큰 차질이 왔을거 같다. 푸하핫<<

가면 하나쯤 사왔으면 재밌었을텐데....

 

 

 

 브란성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이곳 내부 사진을 찍는데 5유로란다.

만원??

돈 내라는 말에 잠시 맘이 흔들린다.

 

"안에 뭐...찍을거 많을까여?"

괜한 아까움에 물어보나 마나한 질문을 가이드에게 던져본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내부 사진 찍어야죠?"

"그래, 맞다~ 사진 맘껏 찍으려고 카메라도 DSLR로 새로 장만했고,메모리도 8기가나 준비해 왔잖아??"

 

 

엽서에서나 볼듯한 그런 ...초록 이끼가 온 집을 뒤덮은 풍경이 눈을 잡아맨다.

 

"허걱!! 뭐가 이렇게 아름답고 멋지냐~~"

그런 생각이 마악 든다.

 

 

 와아~ 정말 멋지다!!

어디다 앵글을 맞추어도 다 멋져!!

그냥....저 하얀벽과 오래된 색바랜 벽돌이 초록숲과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궁합....

 

브란성 입구의 십자가 비석

 

브란 성은 영국 소설가 브람 스토커가 1897년 공포소설 '드라큘라'를 쓰면서  유명해졌다 .
드라큘라 백작의 모델이 된 사람은 왈라키아 공국의 영주였던' '블라드 드라큘 체페시' 였다.
왈라키아 공국은 루마니아의 트란슬바니아 평원에 있었는데, 그가 이곳에 유폐되었다는 말이 전해지나 14세기 말 왈라키아 공국의 '블라드 드라큘 체페시' 조부가 한때 살았었을 뿐 그가 유폐되었다는 말은 한낱 근거없는 전설일 뿐이라고 한다.
  
브란성은 1377년 브라쇼브 상인들에 의해 지어졌다. 

 

 

 

 

 

 

 

그렇다면 그가 흡혈귀 '드라큘라'백작으로 묘사 된것은 무엇때문이엇을까??  그것은 그의 잔혹함 때문이었다.
당시는 동로마 제국이 쇠태하였고 오스만 투르크의 침입이 빈번하여 결사항전기였다.
체페시왕자는 용감히 싸워 적군에 승리하면 쇠고꼬챙이로 적들의 몸통을 찔러 길가에 세워 오스만 군에 악명을 떨쳤다.
그리고 자기 왕국내의 가난하고 병든자들을 초대해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주고, 가난과 질병에서 해방시켜준다고 모두 불에 태워 죽였다고 한다.
드라큘라는 악마, 용이란 뜻이고 '체페스'란 말뚝을 박는자란 뜻이니 이름과 딱 맞는 행위이기도 하다.
중세 기독교의 논리에 의하면 드라큘라는 '산자의 세계'에도 '죽은 자의 세계'에도 속하지 못하는 '고통받는 영혼'이었다.
그에게 내린 인간이 받을 수 있는 가장 잔혹한 형벌을 받은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죽음'보다 '고통'이란 말이 순간 너무나 잔인한 아픔으로 스쳐지났기에.......
 
그러나  이와같은 얘기도 여러가지로 서로 달리 들린다.
어떤 방송에서 듣기로는 적군에겐 그렇게 잔혹했지만, 자기 왕국 사람들에겐 한없이 인자했던 사람이었다고....
그래서 루마니아 사람들은 지금도 그를 존경할 뿐만아니라, 심지어는 그를 그리워까지 하고 있다고....
 
현 정부의 부정부패를 싸악 쓸어버릴 '블라드 드라큘 체페시'같은 사람이 안나오나~~' 하면서.
 
그리고 브란성은 소설속 '드라큘라'백작하곤 아무 상관없고 영화속에 나왔던 성과 단지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드라큘라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암튼.....
그 소설로 인해서 이 성은 많은 관광객을 연일 끓어 모으고 있다.
 

 

브란성 인근에는 무역업자들인 독일계 상인들이 터를 잡고 살아 현재에 이르기까지 후손들이 상권을 잡고 있는데, 당시 군자금 충당을 위한 과중한 세금에  불만을 품은 그들이 바티칸에 '반 기독교적'이라며 편지를 보내기도 했고, 오스만터키의 술탄이 제페시 왕자의 부하를 매수하여 암살하게 했다한다.
 
암살당한 그의 머리는 소금에 절여서 술탄에게 보내어지고 몸뚱이는 먼 수도원에 매장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브란성은 농민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소박한 성으로, 방어용 요새이기에 좁아서, 대개 여름철 별궁으로 쓰여졌다.

 

 

이사진은 사실 내부에 들어가서 창으로 내다보며 찍은 사진들이다.

어디를 보고 이곳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무시무시한 드라큘라가 사는 성이라고 생각이 드는가!

이 또한 인식의 무서움이다.

독재자들이 맨 처음 탄압하는 것이 왜 '문화,예술'인 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뇌리를 순간 변화시키는 원인이 되기 때문일것이다.

단지, 소설 한권을, 영화 한편을 보았을 뿐인데, 이 처럼 순식간에 전세계 사람들의 생각을 고정 불변의 인식체계로 만들어놓았으니 말이다.

 

우리나라 독재정권 시대를 돌아봐도 얼마나 우스운 일이 많은가!

 

노래가락이 퇴폐적이다~

가사가 불건전하다~

단어가 무엇 무엇을 상징하는 늬앙스를 풍긴다~

................

 

머리가 길다고 지나가는 대학생들을 잡아다가 싹뚝 자르지를 않나~

스커트의 길이가 너무 짧다고 잡아가지를 않나~

밤 12시 통금이 있어 혈기 넘치는 대학생들이 얼마나 많이 경찰서 창살보호소에서 밤을 지새웠는가~

정치적인 소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문인들의 저서가 금서가 되었고, 감옥까지 갔는가...

 

중세시대에 많은 문화예술이 탄압을 받았던것 중 그중에서도 가장 탄압을 받았던것은 '춤'이라고 한다.

정신뿐만 아니라 온몸으로 받아들이기에 그만큼 가장 깊게 인간을 변화시키기에 그랬는 지도 모르겠다.

 

암튼....

내게 보이는 이 드라큘라 성은 마치 동화속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과자집같아 보인다.

지붕의 기와 하나 하나 를 들춰내 냠냠 먹을 수 있는 맛있는 과자집....

그래서 두 눈이 신기함과 행복감으로 가득 찬 어린아이가 된 듯한 느낌...

 

                                                                영화에서 종종 드라큘라가 사라지곤 하던 우물터.

 

 

 

아래로 일찌감치들 내려가 있는 일행들이다.

28명 일행중 내부 사진을 찍겠다고 돈을 낸 사람은 나랑 나중에 알게 된 일러스트작가 단 둘뿐...

그러니 나는 아직 2층에 있는데....ㅎㅎ

 

아래에서 '나정선' 형님께서 소리치신다.

"사진 찍어..."ㅎㅎㅎ

"넵!!"

 

일행들이 벌써 다 내려가 계신것을 보고 나도 서둘러 달려 내려왔다.

아~~나는 맨날 달리는 인생!!

그래도 나도 사진 한컷 찍고 나가야지^^*

 

흐드러진 나뭇가지가 브란성과 어우러져 멋스럽다.

 

입구에서 다시 한컷....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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