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전시회

오르세미술관소장품-조각과 건축

나베가 2007. 4. 30. 00:01
전 세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오르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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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소장역사 02.회화와파스텔화 03.조각과건축 04.장식미술품 05.사진
조각
19세기 내내 많은 조각들이 제작되었지만, 19세기 조각은 지난 50년 동안 그리 주목 받지 못했다. 19세기 초 활동했던 대표 조각가들인 뤼드, 다비드, 당제, 프라디에, 프레오 그리고 바리의 작품들이 오르세미술관 천창을 통해 떨어지는 빛을 받으며 전시되어있다. 장수했던 프레오와 바리 외의 나머지 조각가들은 후세대를 형성한 후 1850년대 즈음 모두 사망했다.
아방가르드 조각가이기도 했던 도미에가 1831년부터 1833년까지 제작한 예술계의 명사들은 사실주의 조각의 길을 연다. 맞은편에 전시된 카리에 벨뢰즈의 작품과 중앙통로에 전시된 카블리에, 클레젱저, 들라플랑슈, 뒤보아, 기욤, 팔귀예르, 메르시예의 작품을 통해서는 절충주의적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조각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미켈란젤로의 영향을 받은 카르포는 제2제정의 경제적 비약을 증명하듯 국가의 주문을 받아 제작한 작품들 속에 자신의 열정을 쏟아 부었다. 카르포가 제작한 석고 작품은 오페라 가르니예 건물 정면을 장식했던 돌로 된 <춤> 이라는 작품과 함께 전시 되어 있다. 드가의 엄격한 조각 규칙을 적용한 작품들과 상징주의와 원시주의의 길을 연 고갱의 조각들이 오퇴르갤러리에 소개되어있다. 금빛 테두리가 빛나는 거울로 장식된 2층의 페트전시실에는 살롱에서 상을 탄 대리석 조각품들이 전시되어있으며, 다음 전시실은 1870년의 전쟁과 패배를 담은 작품들로 소박하게 꾸며져 있다.
테라스에는 마치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제 3공화국의 기념물들이 전시되어있는데, 1880부터 1900년까지 강하게 나타났던 계몽주의적 이상을 나타낸다. 뫼네에, 달루, 외저의 노동자와 농민을 주제로한 사실주의 작품들은 세느강 쪽으로 난 전시실에 전시 되어있으며, 진열장에는 상징주의 조각이 전시되어 있다.
로댕의 작품은 그의 천재성을 나타내듯 테라스 안쪽 전체를 차지한다. 오르세미술관은 로댕박물관의 기탁을 받았는데, 1919년 로댕박물관 개관을 위해 그곳에 보내졌던 뤽상부르그미술관 소장품들과의 교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많은 스캔들을 일으켰던 로댕의 <지옥의 문>과 <발자크>은 강한 감동을 전해주는 걸작으로 평가되면서 오르세미술관 소장품 중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끝으로 부르델, 마이욜, 베르나르, 퐁퐁의 안정적이고 단순한 형태의 작품들이 전시장을 장식하고 있으며, 조각의 기법을 알려주는 진열대들이 중층의 유리 갤러리 속에 전시되어있다.
건축

오르세미술관 건축물은 그 자체로 전시장 공간을 구성하는데 기여했으며, 미술관내 전시장 구성은 전시장 디자이너 리차드 페두지가 담당하였다.
오페라전시실에 전시된 갸르니에의 색채소묘, 오페라 건축가가 기탁한 조각과 장식 모형들, 1900년 만국 박람회를 위해 실현된 무대 모형, 1875년 개관 당시 그대로의 오페라 수직 단면도 모형 등은 샤를 가르니에가 1875년 완공한 새 오페라 극장의 건축과 장식적 요소들을 환기시킨다. 오페라 극장의 장식 모형들은 회전 방식으로 전시되어 있고, 유리바닥 밑에 전시된 오페라 구역의 1000분의 1 스케일의 모형은 1914년 당시의 도시적 배경을 알 수 있게 한다.
0층에는 고층 탑이 없던 시절 지어진 단층의 건물들의 모습이 다양한 색상으로 표현된 몇몇 기념물 모형을 통해 제 2제정 시대의 절충주의적 성향을 접할 수 있으며, 빅토르 나블레의 한 그림은 오스만 남작의 도시 계획에 의해 변형되기 전 하늘에서 내려다본 파리의 모습을 담고 있다.
오르세미술관은 약 14000개의 건축설계도와 장식 설계도, 소묘와 에펠, 포르미제, 뤼프릭 로베르, 그라세, 갈레, 고세 등의 자료를 소묘를 위한 특별 수장고에 소장하고 있는데, 별관 상층에는 이 자료들을 위한 특별 전시실이 마련될 것이다.

 

장식미술

오랜 시간 동안 주목을 받지 못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장식 미술품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오르세미술관은 1977년부터 장식미술품 소장 정책을 실시하고 있으며, 미술관 내 좋은 공간을 선택해 장식 미술품 전시장을 따로 마련해 전시하고 있다.
대량 생산으로 제작된 품목을 전시하거나 인위적으로 전시실을 장식하는 것을 피하면서, 선택된 작품들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주요 산업회사들에 의해 제작된 걸작들과 기계화를 거부하고 수작업을 하는 장인들의 작품, 그리고 아방가르드 건축가에 의해 구상된 전형적인 가구와 일상용품 등을 포함해 산업 혁명에 관계된 수많은 연구를 진행하기도 한다.
일층 입구 쪽의 몇몇 장식 미술 전시실은 만국 박람회의 성공을 발판 삼아 1851년부터 빠르게 퍼져나간 절충주의의 국제적 유행을 보여 준다. 예술과 산업을 결합시키고자, 건축가, 화가, 조각가, 장식미술가들은 동양이나 일본풍의 문화에서 영감을 얻거나 그리스 로마 시대와 르네상스로부터 받은 유산을 바탕으로 제조업자에게 제품의 모티프를 제공하기도 했다.
2층 6개의 전시실에는 과거의 관습에서 벗어나려 했던 새로운 미술 경향 아르 누보의 발전과 국제적 파급을 증언하는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오르타, 귀마르, 반 드 벨드와 같은 예술 건축가들은 통합적이고 기능적인 이상을 추구했다. 예술에 매혹된 화가나 조각가, 고급 가구세공인, 샤플레, 들라에르슈, 카리에와 같은 도공뿐 아니라, 갈레, 라리크와 같은 유리 세공인, 금은 세공사들은 자연과 움직임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고, 장식 미술을 통해 재현해 내었다.
전면의 별관은 영국, 오스트리아, 미국 예술가, 기하학적 추상적인 경향의 좀 더 근본적 미학 운동의 선구자들인 모리스에서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까지 장식가 혹은 건축가들에게 할애되었다.

 

 

사진

 

19세기는 1839년 사진 기술이 발명된 시기이다. 오르세미술관에서는 옛날 사진을 전시한 최초의 국립 박물관으로서 조형성을 바탕으로 한 사진 작품을 매입하고 전시한다. 이 예술 작품들은 제 2제정과 제3공화국에 대한 값진 자료들이기도 하다.
사진 소장품은 1979년부터 모아지기 시작했는데 현재 45,000이상의 작품이 있다.
19세기 사진의 발달은 중요한 두 시기로 구분된다.
대략 1839년에서 1863년까지의 프랑스와 영국 사진술의 황금시대로 간주되는 “원시”시대는 이 두 나라에서 경쟁적으로 카메라 기구를 개선하던 시기이며, 오르세미술관은 특히 이 시기의 작품들을 풍부하게 소장하고 있다.
당시 사진사들은 색채도, 동작의 묘사도 불가능한 단순한 기술을 구사하였지만, 그들은 장인으로서 일하였기 때문에 인화 과정에서 풍부한 예술적 감각을 뽐내고 있었다.
나다르, 샤를루아 빅토르 위고는 인물 사진을, 르 그래, 레뇨, 비지에, 쇼우 같은 사진가들은 풍경을, 네그르는 운동감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작품을, 발뒤스와 살즈만은 건축을, 오브리나 브런 같은 작가들은 정물을, 루이스 캐롤이나 카메룬과 같은 영국 작가들은 상상과 허구가 혼합된 사진을 즐겨 찍었다.
세기가 바뀔 무렵, 포켓용 순간 사진기가 발명되었다. 쉽게 조작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아마추어들 역시 손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고, 아마추어 사진의 중요성 역시 빠르게 증가했다.

아마추어 중의 상당수는 모임을 만들고, 상업과 산업화를 거치며 잃어버렸던 예술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다시 사진에 불어넣고자 했다. 국제적으로 일어난 이러한 움직임의 대표자는 에머슨과 유명한 잡지 <카메라 작업>의 출판자였던 스티글리츠 같은 영국인 혹은 미국인들이었다.
사진에 회화와 같은 효과를 주려던 경향이 있었다면, 작가, 화가, 판화가들은 그들의 예술에 밀접하게 연관된 아마추어 사진술을 실행하곤 했는데, 오르세미술관은 이러한 흐름을 증명할 많은 작품들을 매입 하였다.
그러나 1900년경, 가장 위대한 사진가 중의 하나인 외젠 앗제와 같은 몇몇 특수한 사진가들이 사진 기술을 보유한 전문가인 동시에 예술성을 겸비한 예술가가 되었다. 그들은 정보용 이미지를 창조적인 감각으로 재 창조하였다.
오르세미술관은 현대 사진술의 시발점인 1915년경까지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만레이의 작품인 <임종 시의 마르셀 프루스트의 초상>은 오르세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가장 최근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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