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반도(2009.8~2009.9)

22.마케도니아/스코프예

나베가 2009. 10. 2. 14:36

 2009.9.2.수요일

마케도니아의 수도 스코프예

 

 
               
처음의 마케도니아는 1371∼1912년에 오스만 제국이 지배한 보다 큰 마케도니아 지역의 일부였다. 마케도니아의 이 부분은 1913년 세르비아에 할양되었으며, 1919년에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이 결성될 때 그 나라의 일부가 되었다(그후 유고슬라비아로 개명). 유고슬라비아가 제2차 세계대전중인 1941년에 추축국들에 의해 분할될 때 불가리아가 유고슬라비아의 마케도니아 전역을 차지했다. 전쟁중에 요시프 브로스 티토는 공산주의자가 이끄는 유고슬라비아 저항운동을 펼친 파르티잔의 마케도니아파를 조직했다. 파르티잔의 활동으로 1944∼45년에 유고슬라비아가 해방된 후 마케도니아는 재편성된 유고슬라비아 국가의 일부가 되었고, 1946년에 이 국가를 구성하는 6개 공화국의 하나가 되었다. 그후 동구권 변혁의 열기 속에서 1991년 11월 17일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했다. 마케도니아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다. 인종적으로는 마케도니아인이 전체인구의 2/3 이상을 차지하는데, 그들은 세르보크로아티아어보다 불가리아어와 더 밀접한 관계가 있는 남슬라브어를 사용한다. 알바니아인·터키인·세르비아인이 모여 사는 지역들도 있다. 인구는 서부에 밀집해 있으며, 세르비아 북부와 독일의 산업중심지로 젊은 사람들이 이주하는 바람에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마케도니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유고슬라비아 연방해체 이전의 유고슬라비아 전체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 밀·보리·옥수수·담배·목화·쌀·해바라기·사탕무를 주로 재배하며 양과 소도 많이 사육한다. 수도인 스코플례에서 강철과 화학제품을 생산하며, 그밖의 제조품으로는 직물·가구·자기·도자기가 있다. 면적 25,713㎢, 인구 2,039,000(2008 추계).
 

 

 

스코프예-수도
산악지대를 흐르는 바르다르 강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고대에 일리리아족의 중심지였던 스쿠피에서 비롯되었으며 4세기에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 치하에서 다르다니아 지구(로마 제국의 모에시아수페리오르 속주의 일부)의 중심지가 되었다. 518년에 지진으로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7세기에 슬라브족에게 잠시 침략당했으나 9~10세기에는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다. 1189년 세르비아인들이 처음으로 이 시를 점령했고 1392년에는 투르크인들이 마케도니아를 정복한 뒤 이 시를 지역 중심지로 삼고 상업요지로 만들었다. 1689년 오스트리아 군대가 진성 콜레라를 근절시키기 위해 이 시를 완전히 불살라버린 후 쇠퇴일로를 걷다가 19세기 베오그라드-테살로니키 간 철도가 건설되면서 다시 발전하기 시작했다. 조약에 따라 1913년 세르비아에 합병되었고, 1918년에는 신생국 유고슬라비아의 일부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중인 1941년 4월 독일인들에게 점령당했으며, 그뒤에는 불가리아 군대의 주둔지가 되었다. 1944년에 해방되었으며, 1945년 마케도니아의 수도가 되었다.
옛 시가지는 고대의 요새가 있는 계단식 하안(河岸)에 있으며 그 북쪽에는 로마 시대의 송수로가 있다. 근처에는 12세기의 프레스코를 소장한 네레지 수도원(1164)을 비롯한 중세의 수도원들이 있다. 그밖의 유명한 건물로는 중세 투르크 여관인 쿠르슘리한을 비롯한 몇 개의 모스크가 있다. 그러나 이 도시가 과거에 지녔던 강한 투르크적인 면모들은 1963년 이후 진행된 재건과정에서 사라졌다. 이 시의 재건은 1,070명의 사망자와 12만 명 이상의 이재민을 내고 시의 약 80%를 폐허로 만들었던 강한 지진이 일어난 후에야 이루어졌다. 당시 세계 78개국으로부터 구호기금과 구호품을 갖춘 의료·토목·건설 팀들이 답지했다. 이때문에 이 시는 '국제 결속의 도시'라고 불렸다. 여러 개의 위성 주거지역과 4개의 공업지역을 갖추고 지진에 견딜 수 있는 새로운 도시계획이 구상되었다. 강 좌안에는 마케도니아 대의기구가 들어 있는 건물과 교육기관·도서관·음악당 및 라디오·텔레비전 방송국 등이 있고, 강 우안에는 경제 및 상업 중심지가 있다. 이 시는 공업·상업·행정의 요지이고, 공업으로는 화학제품·시멘트·농기계·전기제품·벽돌·도자기·유리·담배·맥주·과일 및 증류 알코올, 야채통조림 등의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피혁가공업·목공업·제강업 및 크롬 정제업 등도 이루어진다. 철도 및 도로 연결망과 현대적인 공항이 있는 중요한 교통의 요지이며, 대학교(1949), 공업기술학교, 마케도니아 과학 및 예술 아카데미가 있다. 인구 444,299(1994).

 

 

 

사실..스코프예는 볼것이 별로 없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이 이 여행사에서도 마지막코스고 앞으론 이 마케도니아 코스를 뺄것이라고....

그래도 10번이 넘게 이곳을 왔는데, 앞으로 여행코스에서 빠져버린다는 것이 무척 섭섭한 모양이었다. ㅎ

 

지진때문에 성벽만이 남아있는......

성벽위에 오르니 도시가 한눈 아래 펼쳐졌다.

 

 그래도 난 이 곳 성벽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자연과 어우러져 있는 돌이 주는 느낌과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서...

 

 

 

 

 

 

 

 

 

 

 

 

여기도 정교회 성당같은데, 가이드 설명을 안들어서 잘 모르겠다.

스베티 스파스 교회인줄 알았는데...아닌것 같고...ㅠㅠ

 

 

 

 

 

 내부입장시 입장료가 있었다. 2유로.

아주 시골교회처럼 작았지만 수많은 성상들이 빼곡히 그려져 있고 섬세한 조각문향의 내부장식이 돋보인 성당이었다.

 

 

 

 

 

 

 



Faur? / Requiem, for 2 solo voices, chorus,
                       organ & orchestra, Op. 48
(I ~ V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