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루마니아/부카레스트-차우체스쿠광장
끝없이 펼쳐지는 대평야-해바라기,옥수수,밀밭의 끝자락으로 지평선을 보며 몇시간을 그렇게 달리는 벅참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더우기 비까지 뿌려주어 그 달리는 기분을 더욱 낭만적으로 만들었고, 머릿속을 떠다니는 수많은 상념들과 추억들은 금방이라도 소설책 몇권은 나올것만 같았다.
그렇게 벅차오르던 첫날의 일정도 이젠 막바지...아니, 이제 루마니아의 여정을 여기서 끝맺음한다.
바로 독재자로 유명세를 떨쳤던 <차우체스쿠>가 연설중 헬기를 타고 탈출한 역사적인 장소-차우체스쿠 광장이다.
정부를 추진하다가 암살 당했다. 왕정시대부터 공산당 활동을 해오던 당서기장 교오르게 데지가 정권을 잡았다. 후에 그는 스탈린의 미움을 샀다. 1965년 3월 19일 그가 급사하게 되자 그의 추종자였던 니콜라이 차우체스쿠가 권력을 잡게 되었다.
<차우체스쿠광장의 구 공산당 건물 >
정 가운데 국기가 달려있는 그 위가 바로 차우체스쿠가 연설하던 발코니...
루마니아의 민주 유혈혁명이 헝가리 국경근처 티미쇼아라 도시에서 시작 되었다. 당시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체스쿠는 이란방문 일정이 있었다. 떠나기전 사전에 도시를 진압하라고 당부한 상태에서 출국하였지만 혁명의 시작은 꺼지지않고 더욱더 타오르게 된다.
정부에서는 과거 우리한국의 광주사태처럼 모든 취재 /외각도로봉쇄 / 출입통제 등 방법을 사용한것처럼 루마니아에서도 이와 같은 방법을 사용했지만 타오르는 불길은 막을 수가 없었다.
결국 차우체스쿠는 돌아와서 관계 책임자들을 추궁하였고 현재 티미쇼아라에서 일어나는 일은 혁명이 아니라 불순분자들의 폭동이라고 하면서 정부차원의 관제집회를 하려고 부카레스트 시민들을 지금의 혁명광장에 불러 모았다.
그리고 건물 가운데 깃발이 있는 발코니에서 차우체스쿠는 국민들을 향하여 연설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모인 군중들을 서서히 정부타도 집회로 바뀌는 분위기가 되면서 2 명의 시민이 차우체스쿠를 향하여 '독재자는 물러가라'는 구호 와 달걀인지 토마토를 던졌다. 이로 인해서 비밀 경찰들은 재빨리 이들을 체포하여 데리고 사라지면서 차우체스쿠는 " 국민들을 향하여 조용하세요!" 라는 말을 몇번이고 되풀이 하게된다.
드디어 성난 군중들은 공산당 건물을 향하여 돌진할 분위기였고, 불안한 느낌을 받은 차우체스쿠는 제빨리 수행원들 경비하에 공산당 본부건물 옥상으로 올라가서 백색헬리곱타 탈출 작전을 시작하게 된다.
당시 헬리곱타엔 정원초과 인원이 탑승하여 차우체스쿠 무릎위에도 수행원이 앉았다고 한다. 도망가면서도 국민들이 배반할 리가 없다는 생각과 그리고 개인 별장에 가서 숨겨놓은 각종 보화와 현금을 가지고 도망가려다가 붙들려 12월25일 현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국립 도서관 건물>
아래 사진 정 가운데(위 사진에도 있음) ...건물 맨 꼭대기-TV안테나가 있는곳을 보면 총탄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다.
지금도 이자리에는 혁명당시 죽은자들을 위하여 기념탑을 세우고, 또 건물 근처에 혁명시 부서진 건물을 보존하고 있고 당시 총격으로 인해서 파괴된 건물 이나 유리창이 그대로 보존되어서 당사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혁명당시 죽은 자을 위한 위령탑>
어느새 해는 지고 건물들의 창에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다.
혁명이 일어나고 수많은 군중들이 죽어난 곳에서의 느낌은 언제나 씁쓸하다.
딱히 사진찍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냥...
차우체스쿠가 연설하다가 헬기타고 도망갔다는 구 공산당 건물과 총탄자국으로 지금도 커다랗게 구명이 나있는 건물, 그리고 위령탑만을 카메라에 담은 채 멍청히 서있다가 버스에 몸을 실었다.
<크레출레스쿠 교회>-가로등불 반짝이는 곳에 있는 건물.
18세기에 건설된 전형적인 루마니아 정교 교회로 혁명광장에 있다. 도시 한가운데에 있다는 사실을 잊게 해줄 정도로 교회 안의 고요함은 별천지. 하지만 기도를 올리는 신자들은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입구 포치 천장에는 선과악을 재판하는 신의 모습이 그려진 18세기의 프레스코화가 있다고....
우린 그저 멀리서만 외부만 보았다.
이제 차우체스쿠가 북한의 김일성 주석을 방문하고 와서 그 건물에 반해 자신도 짓기 시작했다는
세계 제 1규모를 자랑하는 국민관(차우체스쿠 궁전)을 보러 간다.
<차우체스쿠 궁전>
차우체스쿠가 거액을 들여서 지은 거대한 궁전. 방의 개수는 3,107개에 이른다. 세계의 관청, 궁전등의 건물 중에서는 워싱턴 D.C에 있는 미국의 국방성 헥타곤을 잇는 규모라고 한다. 궁전내부는 천장, 벽, 창틀에 이르기까지 순금장식이 있다. 폭18 m, 길이 150 m에 이르는 회랑 Homour Gallery, 높이 18 m, 총면적 2200㎡의 대홀 Union Hall이 압권. 궁전을 지탱하는 기둥은 흰색, 붉은색, 분홍색, 베이지색의 대리석으로 루마니아 각지에서 모아온 것이다. 현재의 각 정당의 사무실이 들어와 있으며 국제회의와 콘서트에도 이용하고 있다.
니콜라이 차우세스쿠 (Nicolae Ceausescu)
차우세스쿠는 루마니아의 전설적인 독재자라고한다
스코르니체슈티 출생. 1933년 공산주의청년동맹에 가입하여 곧 중앙위원이 되었고
1936년 당시 불법정당인 공산당에 가입하여 1936∼1939년, 1940∼1944년 2회에 걸쳐 투옥되었다.
루마니아 건국 후 당 중앙위원 ·국방차관 ·당 정치국원후보를 거쳐 정치국원이 되었다.
1965년 게오르기우데지의 사망과 더불어 루마니아공산당 서기장이 되고,
1967년 국가평의회 의장(대통령)이 된 이후로 1985년 4선 대통령이 되었다.
1989년 반(反)정부시위에 무자비한 유혈진압을 강행하다 임시정부에 의하여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나랏돈 10억 달러 이상을 빼돌린 차우세스쿠. 1982년, 어리석은 경제정책으로 나라 경제가 휘청거리자 내놓은 대책.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물건은 다 팔어버려~"
그리하여 루마니아의 모든 농산물과 공산물이 강제로 외국으로 수출되었고,
그럭저럭 살던 루마니아 국민들은 생필품이 바닥나 굶어죽는 사람이 떼로 나타난다.
또한 멀쩡한 마을과 집을 몽땅 불도저로 박살내고 사람들을 새 아파트로 강제 이주시킨다는 황당한 계획도 세웠다.
이 외에도 수많은 황당 계획들이 과시용으로 발표됬었다.
그는 자신이 암살될까봐 늘 두려워했고, 특히 독살당할것이라는 피해망상에 시달렸다.
그래서 늘 자신만 입고다니는 소독의복을 입었고,
자신의 가족, 애완견이 먹는 모든 음식과 물은 다른 사람이 미리 먹어보게하였으며.
심지어 몸에 독을 묻혀 독살할까봐 악수와 스킨십도 아주 싫어했다.
영국 방문시 에피소드도 흥미롭다. 영국에 방문시, 비행기에서 내려서 엘리자베스 여왕과 악수한 그는,
여왕이 보는 앞에서 바로 자신의 손을 소독수건으로 닦았다.
게다가 영국 정부에서 대접한 모든 음식도 믿을수 없다해서 영국 국빈들이 보는 앞에서 시종들에게 미리 먹어보게 하였고,
영국 국빈호텔의 가구와 침구들도 믿을수 없다고 루마니아에서 자기 전용 소독 가구를 특별공수하게 지시하는 쇼를 벌였다.
그는 김일성의 절친한 친구로, 항상 김일성을 자신의 정치적 선배로 생각했다.
김씨왕조의 세습 체제를 아주 동경해. 자신의 가족들은 루마니아의 모든 요직을 차지했으며,
자신이 죽으면 국가원수 자리는 누구한테 물려주고 또 그가 죽으면 누구한테 물려줄지 모든 계획을 짜놓았었다.
게다가 평양방문시 주석궁을 보고 "와 너무너무 멋있다"라고 생각한 나머지 루마니아로 귀국하자마자
1만 7천개가 넘는 방을 가진 거대한 '인민의 궁전' 건설을 지시. 전국민을 죽어나게 만들었다.
그도 결국 1989년 종말을 맞는다. 참다못한 국민들은 토케시 목사를 중심으로 민주항쟁을 벌이기 시작했고,
차우세스쿠는 무장트럭과 전투헬기까지 동원해 국민들을 학살한다.
격분한 국민들은 무력 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개념이 충만한 정규군이 국민들 편에 가세하면서 보안군은 박살이 나고,
차우세스쿠 부부는 헬기타고 도망을 간다.
하지만 헬기 조종사는 차우세스쿠를 속인 후 시골길에 내려준 후. 그대로 이륙해서 가 버렸다.
차우세스쿠 부부는 길을 헤매다가 삼림 보호소 건물로 들어갔고,
삼림 보호소 직원들은 차우세스쿠를 상냥하게 맞이한후 밖에서 문을 잠궈버리고 경찰에 신고,
차우세스쿠 부부는 도망간 지 3일도 안 돼 잡혔다...(펌)
차우체스쿠 궁전을 정면으로 양쪽 대칭으로 원형을 그으며 똑같은 건물이 있다.
위,아래 똑같은 모양의 건물인데, 윗 사진은 도착해서 가이드 한참 설명할때 찍은 사진이고, 아래 사진은 설명이 끝난 뒤의 사진...
단 몇분사이에 이렇게 분위기가 싸악 바뀌다니~~
어느사이 일순간...건물 전체에 불이 들어왔나?? 아님, 햇볕때문인가?? 아님...가로등??
샹젤리제 거리
빠리의 샹젤리제보다 조금 더 넓게 만들었다고 한다.
부쿠레슈티에는 강이 없는데 차우체스쿠 정부는 다뉴브강을 연결하고 250km 에 이르는 흑해까지 운하를 건설할 계획도
세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