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보스니아/ 사라예보...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우린 버스안에서 사라예보를 바라보고 느낌을 공유한다.
전후 10년이란 시간이 흘렀어도 전쟁의 상흔이 도시 여기 그대로 남아있고, 수많은 비석들이 세워져 있는 엄청난 규모의 공동 묘지를 보면서 처음으로 이들의 전쟁이, 삶이 얼마나 치열했는 지를 느낄 수 있었다.
비잔틴 제국시대에 동방정교가 들어왔고, 15세기 오스만 투르크족의 500년동안 지배를 받으면서 자연스레 이슬람화 된 민족...
그 오랜 역사속에서도 잘 지내던 민족이 어느날 서로에게 총구를 드리밀며 이 엄청난 비극을 불러일으켰다니...
1991년 499만명이던 인구가 전쟁이 끝난 1999년엔 399만명으로 줄었다고 한다.
무려 100만명이 죽고 11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하얀색 십자가는 카톨릭교도의 묘, 검정색 십자가는 동방정교의 묘, 그리고 그냥 막대모양의 비석은 이슬람교도의 묘라한다.
그러나 재빨리 스쳐 지나는 버스투어라는 한계....
그런 아픔과 느낌은 역사적인 한 순간으로 그저 스쳐 지날뿐.....
내 시야에 또다시 펼쳐진 사라예보라는 도시는 그저 또 아름답고 평화로운 도시로 보였다.
강이 도심을 흐르고...
돌다리가 아름답고...
초록이 풍성한 야산으로 그 사이 사이 보석처럼 박혀있는 붉은 기와집들이 그저 나를 흥분으로 이끌었다.
사라예보에 대하여....
사라예보 근처에는 부트미르 문화를 이루었던 신석기 시대 취락지의 유적이 있다. 로마인들은 보스나 강이 발원하는 곳에서 가까이 있는 일리드자에 휴양지를 만들었는데, 지금도 그곳에는 유황 온천이 있다. 고트족과 뒤이어 슬라브족이 7세기경 이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1415년 사라예보는 브르보스나라는 이름으로 언급되고 있으며, 15세기말 투르크에게 점령당한 후 교역 중심지와 이슬람 문화의 거점으로 발달했다. 두브로브니크의 상인들은 라틴 구역인 라틴루크를, 이주해 온 세파르디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구역인 치투타니를 세웠다. 17~18세기는 재난이 많았던 때로 화재와 역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은 한편 1697년에는 사보이의 에우제니오 공(公)이 이 도시를 불태웠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사라예보는 상당했던 전시 피해를 신속히 복구했다. 이곳은 도로망의 중심지이며 전화(電化)된 철도를 통해 브르폴례에서 시작되는 간선철도와 연결되어 있다. 또한 아드리아 해로 이어지는 철도 교통망이 있다. 철물과 카펫 제조를 비롯하여 오래전부터 계속된 수공업이 맥을 이어오고 있다. 1984년에는 여기에서 동계 올림픽 대회가 열렸다. 사탕무 정제업, 양조업, 가구·담배·메리야스 제조업, 성장일로에 있는 자동차산업 등이 이루어지며, 통신기관과 농업 관련 복합산업체가 있다. 또한 사라예보 분지에서 채굴된 갈탄이 근처 일리야슈에서 코크스로 가공되며 용광로가 있어 주물용 선철을 생산한다
아래 보이는 까페는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곳라고 했는데...ㅠㅠ
골목사이로 먼발치의 야산풍경이 화악 시선을 잡는다.
붉은 기와지붕들이 올망 졸망 모여 만든 작품같은...
우린 버스에서 내려 구시가지를 걸었다.
체코 대사관과 맥주공장을 지나 성안토 성당에 도착했다.
1892년에 세워진 성안토 성당
너무나 소박한 성당 내부....
성당에서 나와 골목길을 조금 걸으니,건물벽에 이름이 새겨진 동판들이 주욱 붙어있다.
다름아닌 이곳 내전당시 희생된 학생들과 선생을 기리는 뜻으로 만들어 놓은거라 했다.
바그너 - 탄호이저 中 저녁별의 노래